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십자군 전쟁 (문단 편집) === 미화의 시대 === 전쟁이 끝난 후 기독교 세계에서는 [[기사도]]적인 일화로 인해 영웅서사시처럼 미화되어 낭만적인 영웅담으로 전해졌다. 성전에 참가한 사람은 크게 존경 받았고 성지순례는 모든 기독교인들의 꿈이었으므로 기독교 세계가 이 전쟁을 완전히 잊어버린것은 아니다. 또 오스만 제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이슬람 세력과의 투쟁은 유럽국가들에게 보편적이었으므로 십자군 전쟁은 중세 이후로도 계속 유럽인들의 기억에 남아있었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국왕 [[세바스티앙 1세]]는 십자군을 동경해 북아프리카 원정을 감행하기도 했고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도 [[신성동맹]]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대한 십자군을 계획하기도 했다. 한편 [[19세기]] 전까지는 이슬람권에선 이 전쟁에 큰 관심이 없었다. 무슬림들 입장에서는 일단 자신들이 승리한 전쟁이었고, 곧이어 터진 몽골 제국의 침략이 이슬람 세계에 훨씬 더 깊은 상흔을 입혔으므로 십자군에 대한 기억이 상대적으로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비유하자면 로마인이 [[한니발 바르카|한니발]] 이전에 국가적 위협으로 [[피로스]]가 있었음을 잊어버린 것과 비슷하다.] 근대 계몽주의 학자들은 십자군 전쟁을 중세의 암울한 역사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십자군 전쟁은 재조명받게 된다. [[오스만 제국]]을 이긴 유럽 국가들이 중동 지역을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위에 '영향' 항목에 나온 대로 명분을 위해 자신들을 '''제2의 십자군'''이라 자화자찬한 것이다. 서구 국가들이 이렇게 중동 침략을 십자군 전쟁의 이미지로 차용하자 이슬람 측에서도 그에 맞서기 위해 살라흐 앗 딘 등 영웅을 재발굴해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십자군 전쟁은 순식간에 역사의 화두로 떠올랐다. 한편 이 십자군 이미지는 서방세계의 여러 근현대 전쟁에서 다양한 선전으로 가공되기도 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아이젠하워]] 유럽연합군 최고 사령관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두고 연합군 군인들을 '십자군'이라고 지칭하며, 나치로부터 유럽을 해방시키는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나치 독일]]도 [[독소전쟁]]을 두고 '[[소련|볼셰비키]]에 대항하는 유럽의 십자군 전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라크 전쟁]]을 두고 [[조지 워커 부시]]가 십자군을 가리키는 [[크루세이더]]라는 이름을 쓰던 것도 문제였다. 결국 결과도 십자군 전쟁 꼬락서니가 났지만. 미국에서도 이 말에 유태계 정치가들이 매우 언짢아했는데 십자군은 십자군 전쟁 당시, 종파가 다른 그리스도인이나 유태인들도 마구 학살하고 약탈했기 때문이다. [[민중 십자군]] 항목을 봐도 [[관동대학살|십자군이 억울한 유태인을 죽여놓고 되려 적반하장으로 유태인이 그리스도인 죽였다고 소문내며 유럽 각지에서 유태인 집단 학살을 일으키게 했다.]] 동로마와 중동에 살던 정교회의 기독교인들 역시 이단이라며 십자군한테 학살당했다. 그러다보니 정교회는 "이슬람보다 더 악랄한 놈들"이라며 십자군을 증오할 정도. 이렇게 서구권은 십자군 전쟁을 잘난 듯이 종교 드립을 쓰거나 이렇게 멋지듯이 썼다. 한편 [[걸프 전쟁]]으로 시작해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의 전쟁에 서방세계의 다국적군이 중동으로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하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서양인들이 십자군 전쟁을 또 벌이고 있다!"라고 호도하며 [[언플]]을 시도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밑의 이해타산적 재평가와 맞물려서 '테러와의 전쟁'은 핑계고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실제로는 석유를 노리고 중동을 침략하는 것이라는 [[스테레오타입|선입견]]이 만들어지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